
삼양목장: 바람, 가축, 귀농, 카우보이
삼양목장은 한국 농촌을 근대화하려던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2년에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자라난 것은 여러 겹이 포개진 장소다. 미국의 농법, 유럽의 가축, 서구의 여가 이미지가 모두 같은 고원의 바람에 실려 왔다.
해발 850미터에서 1,500미터. 삼양은 바람이 가장 먼저 느껴질 만큼 높은 곳에 있다. 바람은 풀밭과 울타리, 길을 따라 줄지어 꽂힌 바람개비 사이를 지난다.
목장 곳곳에 들어선 풍력 터빈도 같은 사실의 일부다. 이 목장은 바람을 피하지 않고, 바람과 함께 일하도록 지어졌다.

가축


약 900마리의 소가 고지대 초원에서 풀을 뜯는다. 이 목장은 한국이 소고기와 유제품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던 시절, 이를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기 위해 세워졌다.
양은 그보다 늦게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지금 삼양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양 떼를 거느리고, 양 자체가 풍경 못지않은 볼거리가 되었다.


귀농

귀농. 도시를 떠나 땅으로 돌아가는 일. 정작 삼양을 찾는 이들 대부분은 그러려고 온 게 아니다. 오후 한나절 머물며 울타리를 따라 걷고, 딱히 하는 일 없는 언덕을 바라본다.


막상 떠나지는 않더라도, 그 끌림은 진짜다. 몇 시간의 탁 트인 하늘, 느릿한 짐승들, 풀 냄새 나는 공기. 차를 몰고 돌아가기 전에, 그 그리움이 무엇인지 다시 떠올리기엔 충분하다.

카우보이

양몰이 시연은 삼양에서 가장 떠들썩한 볼거리다. 일하는 개 한 마리가 들판에서 작은 양 떼를 몰고, 조련사는 한쪽에서 지켜본다.
보더콜리와 그 친척뻘 견종이 이곳에 있는 건 양몰이가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고, 양이 이곳에 있는 것도 기후가 맞아서다.



양몰이 경기는 본래 영국에서 비롯됐지만, 카우보이는 전쟁이 끝난 뒤 미군 기지와 영화, 그리고 그와 함께 따라온 문화적 파급력을 타고 들어왔다. 그렇게 그는 이 나라가 전원의 여가를 그리는 방식의 일부가 될 만큼 오래 머물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