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이 기억하는 곳
제주 신화의 풍경
제주에서는 섬 그 자체가 돌에서 태어났다. 전설에 따르면 거인 설문대할망이 치마폭에 흙을 담아 한라산을 빚었고, 그의 오백 아들은 슬픔에 잠겨 돌이 되었다. 1999년부터 옛 쓰레기 매립지 자리에 하나둘 모아 온 제주돌문화공원은 이 신화와 그로부터 비롯된 전통들을 화산섬의 풍경 안에 품고 있다.

담도, 그릇도, 석상도, 모두가 현무암이다. 모두가 같은 검은 살갗을 지녔다. 그 살갗은 빛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낮의 해는 따스한 호박빛을 끌어내고, 노을은 그것을 짙은 구릿빛으로 되돌리며, 안개는 은빛으로 식힌다. 한라산 기슭에서 돌은 수백 년 동안 이렇게 변해 왔다.

하담
숨 쉬는 담.
낮게, 구멍 숭숭, 막쌓은 담. 바람을 가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담.
제주의 마을은 바람과 현무암이 빚어냈다. 섬사람들은 화산석을 막쌓아 밭담을 둘렀다. 바람을 가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낮고 구멍 숭숭한 담이었다. 틈은 열어 두어 사람도 가축도 자유로이 오갔다. 태풍에 대비해 그물줄로 동여맨 초가지붕은 집을 낮게, 땅에 단단히 붙어 있게 했다. 돌문화공원에는 그 시절 그대로의 담을 간직한 초가 마을이 복원되어 있다.


옹기
숨 쉬는 그릇.
낮은 불에 구운 질그릇, 본래 숨구멍이 많은 그릇.
한국에서 가장 요긴한 그릇은 애초에 밀봉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 낮은 온도로 구운 옹기는 본래 숨구멍이 많다. 그 벽은 안에서 익어 가는 된장과 고추장, 김치 사이로 공기를 통하게 한다. 제주의 옹기에는 한 가지 차이가 더 있다. 유약을 입히는 육지의 옹기와 달리, 제주 옹기는 유약 없이 장작을 태운 재를 입히고 천연 기름으로 마감해 그 아래 새겨진 무늬를 살려낸다. 집집마다 장독대를 두었다. 볕 잘 드는 돌 축대 위에 수십 개의 항아리를 늘어놓은 자리, 저마다 고요한 발효를 품은 곳이었다. 돌문화공원의 장독대도 예나 다름없이 그 자리에 있다. 아래도 현무암, 둘레도 현무암으로.




방사탑
돌 하나에 소원 하나.
공동의 기도로 쌓아 올린 현무암 돌탑.
제주 곳곳, 들판과 갈림길마다 현무암을 쌓아 올린 원뿔 모양의 탑이 솟아 있다. 방사탑이라 불리는 이 돌탑은 영적인 표지였다. 마을 수호신을 모신 제단이자, 돌 하나하나를 쌓아 올린 공동의 기도였다. 돌 하나를 얹을 때마다 풍년과 잔잔한 바다, 바람으로부터의 보호를 빌었다. 공원을 일군 백운철은 수십 년에 걸쳐 이런 돌들을 섬 곳곳에서 모았다.






돌하르방
돌 할아버지.
고을이 시작되고 거친 섬이 끝나는 곳, 성문을 지키던 수호자.
제주말로 '돌 할아버지'를 뜻하는 돌하르방은 1754년 김몽규 목사가 섬의 세 성읍 성문 앞에 처음 세운 것이다. 수호자이자 경계의 표지였다. 처음 마흔여덟 기 가운데 마흔다섯 기가 오늘날 제주에 남아 있고, 두 기는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오늘날 돌하르방은 섬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존재이지만, 본래 그 역할은 영적인 만큼이나 실용적이었다. 나그네에게 고을이 어디서 시작되고 거친 섬이 어디서 끝나는지를 일러 주었다.
부리부리한 눈과 넓적한 코, 배 위에 가지런히 얹은 두 손. 현무암을 깎아 만든 돌하르방은 정해진 본을 따르지 않고 만든 이의 손길에 따라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 이들은 오백장군과 나란히 서서 이 땅을 지킨다. 돌이 된 설문대할망의 아들들이 지금도 공원의 들판 곳곳에 서 있다.



오백장군
오백 명의 장군.
슬픔에 잠겨 돌이 된 설문대할망의 아들들.
공원의 들판 곳곳에 오백장군이 서 있다. 거인 설문대할망의 오백 아들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여기고 슬픔에 잠겨 돌이 된 이들이다. 어떤 것은 비바람에 닳아 사람의 형상을 겨우 남겼고, 어떤 것은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솟아 있다. 이들은 전시품이 아니다. 풍경이 된 신화이자, 이 공원이 존재하는 까닭 그 자체다.

